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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가 잉태 첫 순간부터 원죄의 아무 흔적도 받지 않았다는 교리. 이는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기에 적합하도록 그리스도의 예견된 공로에 비추어 미리 하느님이 섭리한신 특전이다. 교회는 ‘원죄없는 잉태’가 사도들에게 계시되어 교회 내에 전래되어 온 교리의 일부라고 가르친다. 성서에는 원죄 없는 잉태 교리에 대한 명시적인 표현이 없다. 그러나 사도들의 구두 가르침에 이 교리가 포함되어 있었고, 다른 명확한 가르침에 은연중 내포되어 있었는데, 이는 복음의 씨앗이 그리스도 교인의 가슴에 열매를 맺고 난 이후에 비로소 전면에 드러난 것이다. 성서상 간접적인 근거로 창세 3:15와 루가1:28을 들기도 하지만, 원죄 없는 잉태에 대한 뚜렷한 신앙은 마리아의 성덕(聖德)에 대한 일반적인 교리를 구체화하는데서 비롯되었다.
루가복음 제1장과 제2장은 마리아를 예외적으로 거룩한 사람으로 보고 있으며 그녀의 성덕을 그리스도의 어머니로 선택받은 사실과 관련시킨다. "너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다. 이제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루가 1:30-31), 이러한 마리아의 성덕은 성모 영보 때 뿐 아니라 마리아의 잉태 순간부터 갖추었음이 수세기가 지난 후에 비로소 밝혀졌다.

① 초기의 발전 :
초대 교회의 교부들은 마리아를 거룩하다고 여겼으나 죄의 흔적이 없다고 보지는 않았다. 시일이 지나면서 교회 안에서는 마리아의 성덕에 대한 신심으로 발전하였고, 한편 마리아가 잉태될 때부터 원죄에 물들지 않았다는 신심의 발전을 보았다. 이 신심은 8-9세기 까지 비잔틴 세계 일대에 널리 전파되었다. 그러나 서방세계에는 전파 속도가 느린 편이었다. 아와 같은 신심의 발전은 마리아가 받은 하느님의 은총에 대한 명확한 개념이나 명제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교인들의 가슴속에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신앙감(sensus fidei) 때문이었다. 복음을 실천하는 일상생활 가운데 그들은 이 진리를 긍정하고 싶은 내면적 요구를 경함한 것이다. 이 신심은 원죄 교리와 조화시키지 못했으나 이 시기 에는 별다른 논쟁이 없었다.

② 중세 서방교회 :
서방교회는 1125년 경 마리아의 잉태를 기념하는 축일을 부활 시켰는데, 이때에 즈음하여 미리아의 잉태가 지닌 성격이 논점으로 부각되었다.
스콜라 신학자들에 의하면, 마리아가 원죄에 물든 적이 없다면 만인(萬人)의 구세주인 그리스도의 구속을 받았다고 할 수 없지 않느냐 하는 점이 문제되었다.
즉 원죄 없는 잉태와 구원의 보편성을 조화시키는 문제였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마리아가 원죄에 물들었으나 탄생 전에 원죄의 사함을 받았다고 설명했으나 요한 둔스 스코투스는
선행구속(先行救贖)이란 개념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였다. 즉 마리아는 아담의 후손이므로 의당히 원죄의 죄과를 받아야 했지만 하느님은 그리스도의 예견(豫見)된 공로에 비추어 마리아를 원죄에서 면제해 주기로 하셨다는 것이다.

③ 교의(敎義)의 규정 :
역대의 교황은 오랫동안 이 문제를 신학자들의 연구대상으로 남기었다. 17세기에 이르러 이를 믿을 교리로 규정에 달라는 신자들의 빗발 치는 요청에도 불구하고 여러 교황은 거절하였다. 교황 그레고리오 15세는 "끊임없이 기도했으나 성령은 이 신비의 비밀을 열어 보이지 않고 있다"고 대답하였다. 마침내 1854년 교황 비오 9세는 주교들과 신학자들의 협의를 거쳐 이를 교의로 선포하였다.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는 자기의 잉태 첫 순간에 전능하신 하느님의 특별은총과 특권으로 말미암아 인류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예견된 공로에 비추어 원죄의 아무 흔적도 받지 않도록 보호되셨다." 이처럼 단정하는 근거는 성령의 도유를 받은 신자들의 총체가 공통적 신앙감을 지니고 신앙 이나 도덕에 관하여 같은 견해를 표시할 때 그 총체는 믿음에 있어서 오류를 범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교회 헌장 12참조).